프로그래머를 꿈꾸지만 내가 어떤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은지 깊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글을 작성하기 전에 나라는 사람에 대해 돌아보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을 그려보았다.

나는 감정 기복이 적은 사람이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이런 나에게도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적으로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생, 중학생이 할법한 낙서를 끄적이는 일들이었지만 그림은 나의 전부였다.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는 종이에 연필을 대고 무언가를 그린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하루하루 어떤 그림을 그릴지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너무 설렜다. 나의 세계에 푹- 빠져 그림을 그리자, 주변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보다 늦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나보다 더 잘 그리는 친구, 나와는 그림 스타일이 다른 친구, 미대를 준비하는 친구. 그림은 어떤 사람이 그리느냐에 따라 완성된 작품이 제각각이다. 그 당시의 나는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주변과 비교하면서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림이 나에게 큰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발을 시작하면서 내가 밟아온 과정을 돌이켜보면, 그림을 그렸을 때와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었다. 처음 개발을 시작했을 때는 원하는 결과가 출력되기만 해도 즐거웠다. 간단한 산수를 입력하고 그 결과가 출력창에 띄워지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산수를 거쳐 구구단을 만들어보고, 조금 더 복잡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면서 그림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설렘을 느꼈다. 머릿속으로만 떠올리던 프로그램들을 뚝딱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웹 개발, 앱 개발, 인공지능을 거치면서 결과물은 다르지만, 상상으로 그려오던 것들을 구현하는 과정이 좋았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매 순간이 즐거웠던 건 아니었던 것처럼, 개발을 좋아하지만, 개발을 하는 모든 순간이 즐거운 건 아니다. 다른 친구들보다 부족한 점을 느끼면서 좌절하기도 하고, 끝내 해결되지 않는 오류 때문에 고생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예전에는 이름조차 몰랐던 것들을 코드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거나, 결국 오류를 해결했을 때, 개발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설렘을 느낀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다른 누군가가 이용했을 때의 뿌듯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이런 희로애락을 느끼면서 20대의 나에게 진지한 것은 개발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개발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거창한 꿈이 있는 건 아니다. 개발하는 과정에서 내가 재미있었으면 좋겠고, 내가 만든 결과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개발하면서 즐거운 순간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지금까지처럼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앞으로의 30대, 40대 혹은 그 이상의 삶을 그려보고 싶다.